1. 에드바르 뭉크와 두 번의 죽음
"나는 죽음을 그렸지만 여기 오는 사람들은 희망을 봤으면 좋겠다."
노르웨이의 대표 화가이자 <절규>로 유명한 에드바르 뭉크는 군의관인 아버지와 그와 20살 차이나는 어머니 사이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뭉크가 5살이 되던 1868년 그의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뭉크는 자신의 누나 소피에에게 많이 의지하며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웠습니다. 그러나 약 10년 후 사랑하는 누이 소피에마저 폐결핵으로 뭉크의 곁을 떠났습니다. 어린시절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어린 뭉크에게 큰 충격이자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만큼이나 뭉크를 괴롭힌 것은 그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내가 죽자 우울증과 정신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아내의 죽음은 신앙심이 부족한 자신 탓'이라며 종교에 심취하게 됩니다. 쉬는 날이면 기도실에서 하루종일 있었고, 뭉크와 뭉크의 동생들(뭉크는 5남매 중 둘째)에게도 강요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밥을 먹을 때면 아이들에게 아내의 유언장을 귀가 닳도록 읽으며, "아내가 세상을 떠난 것은 다 너희들 잘못"이라며 아이들에게 정신적 학대를 가했습니다.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와 기관지염을 달고 살았던 어린 뭉크는 힘이 들때면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더 선호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그리다 문득 '아, 나는 그림을 통해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이구나. 그림을 그려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예술하는 사람은 문란하다며 완강하게 반대하였습니다. 이러한 뭉크를 감싸준 것은 뭉크의 이모인 '카렌'이였습니다. 뭉크의 아버지 몰래 뭉크에게 물감과 붓 등 미술용품을 사주었고, 덕분에 뭉크는 예술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2. 에드바르 뭉크와 두 번의 사랑
에드바르 뭉크의 첫 사랑은 '밀리'였습니다. 밀리는 옷도 잘 입고 인기도 많아 '인플루언서'나 '셀럽'에 가까운 사람이였습니다. 뭉크는 사랑과 관련된 모든 것이 밀리와 처음이였습니다. 그래서 밀리를 매우 사랑했지만, 밀리는 유부녀였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였습니다. 슬프게도 밀리는 점점 사랑이 식었고, 뭉크는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밀리를 보며 슬픔과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뭉크가 그린 <키스(1892)>은 밀리와 뜨겁게 연애하던 시절 그린 그림이고, <두사람 : 외로운 이들(1896)>은 밀리가 소원해질 때 그린 그림입니다.
이런 뭉크가 밀리에게 분노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밀리가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재혼을 하게 됩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필요악이라 느끼면서 뭉크는 자신의 슬픈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됩니다. 분노, 슬픔, 괴로움 등 다양한 감정을 느꼈고, 극심한 고통과 우울감에 휩싸입니다. 우울감에 젖어 있던 뭉크는 어느날 노을빛의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거기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자연의 비명을 듣게 됩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절규(1896)>입니다.
뭉크의 마지막 사랑은 '툴라'였습니다. 툴라는 교양 넘치고 매우 지적인 여성으로 뭉크가 먼저 툴라를 사랑했습니다. 뭉크는 '밀리'와 연애하던 시절과 같이 <키스(1897)>라는 작품을 남기며 뜨겁게 연애했지만, 툴라의 집착이 심해지자 뭉크는 툴라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툴라는 뭉크에게 결혼을 요구했지만 심신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병약했던 뭉크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툴라를 계속 밀어내며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 당시 뭉크의 취미는 사격으로 집에 권총이 있었는데, 툴라는 그 권총을 사용해 자살소동을 벌이며 뭉크에게 협박했습니다. 뭉크가 툴라를 말리는 과정에서 오발 사고가 일어나 뭉크의 왼쪽 가운데 손가락에 총알이 박히고, 이 일로 툴라와 헤어지게 됩니다.
3. 에드바르 뭉크의 작품
에드바르 뭉크는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는다, 보았던 것만을 그린다"며 자신이 겪었던 것을 그림으로 그려낸 화가입니다. 초기작에서는 아카데미가 원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나중에는 자신의 감정을 담아내는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 중에서도 <병든아이(1885~1886)>은 자신의 누나 소피에의 모습을 그렸는데, 손이 뭉퉁하고, 채색이 이상하다며 혹평을 들었습니다. 사실, 병든아이라는 제목은 그 작품을 그린지 40년이 지나서 붙인 이름입니다. 출품 당시 습작으로 제출하였고, 이후에도 뭉크는 자신의 누나 소피에에 대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뭉크는 병든아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지만 평단의 악평이 쏟아지는 스타일은 아카데미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없었기에 다시 그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그린 <봄(1889)>은 병든아이와 같이 어딘가 처연해보이는 소녀의 그림이였고, 이 그림으로 에드바르 뭉크는 학교의 지원을 받아 파리 유학길을 오를 수 있었습니다.
에드바르 뭉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절규뿐만 아니라, 신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점묘법으로 그려낸 <칼 요한 거리의 봄날(1890)>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그림도 많이 남겼습니다. 특히나, 노르웨이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태양(1910~1911)>은 척박한 노르웨이에서 자연과 생명에 대한 예찬을 담은 그림입니다.
뭉크는 유언으로 자신의 그림 전부인 유화 1,200점과 판화 15,000점을 노르웨이 당국에 기증합니다. 이는 흔치 않은 것으로 노르웨이에 가면 뭉크 박물관에서 뭉크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게 된 배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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